행복하게 살고 장엄하게 죽어라.

Live Happily, Die Majestically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오전 만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B.K.S Iyengar(비케이에스 아이옝가)가 남긴 말이다. 요가 선생님 치곤 짧은 삶(?)을 살았으며 현대 요가계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서구에 요가를 널리 전파한 분 중에 한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에서 강의를 시작한 뒤 많은 학생들이 본인들이 하고 있는 요가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잘못 알려진 정보도 너무 많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특히나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 외국에선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이름들이 한국의 요가원들에선 생소한 이름이라는게 참 안타까웠다. 난 아쉬탕가 요가 수련자이고 아쉬탕가 요가 선생님들을 소개할까 했으나 최근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그 분을 먼저 소개하는게 도리라는 생각에 첫 글을 아이옝가로 정했다. 그럼 뉴요기즈와 함께 출바알~!!!


그의 이름은 아헹가가 아니다.



<왼쪽은 나의 스승님 바라트, 오른쪽은 아이옝가

바라트 선생님은 아이옌가의 제자이다.>


난 한국에서 그 분을 아헹가라고 부르는 것이 참 짜증났다. 만약 당신 이름이 김철수인데 누군가가 당신을 김칠득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 것도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의 철학을 따른다면서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 분의 정확한 이름은 Bellur Krishnamachar Sundararaja Iyengar (벨루르 크리쉬나마차르 순다라라자 아이옝가) 보통 줄여서 B.K.S Iyengar (비케이에스 아이옝가) 라고 발음한다. 아이옝가 스펠링 어디에도 H는 들어가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한국어판 책을 아헹가 요가라고 적어놨는지 모르겠다. 외국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엇비슷하게는 발음해줘야하지 않나.




어린 시절의 아이옝가는 많이 아팠다.


아이옝가는 1918년 13남매 중 11번 째로 태어났다. 인도 카르나타카 주의 벨루르(Bellur)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참고로 인도 마이소르와 뱅갈로르 역시 같은 카르나타카 주에 위치한다. 아이옝가가 태어났을 당시 그 지역에서 독감 바이러스가 대유행 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옝가는 약하고 아플 수 밖에 없었고 어린 시절 말라리아, 폐결핵, 장티푸스, 영양실조 등을 앓았단다. 요가하는 사람들의 풍문에 의하면 의사가 아이옝가에게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가 직접 말하기를


" 나의 팔은 가늘었고, 나의 다리는 막대기 같았으며, 나의 배는 볼품없게 튀어나왔었다."

" 나의 머리는 아래로 꺽여있었고, 그 것을 들기 위해선 큰 노력이 필요했다."

그가 창시한 아이옝가 요가의 특징이 아픈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도구(Props)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그의 어린시절의 경험에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스승은 현대 요가의 스승 크리쉬나마차리야



<아이옝가의 스승 크리쉬나마차리야>


보통 크리쉬나마차리야를 현대 요가의 스승이라 부른다.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를 만든 혹은 재정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크리쉬나마차리야가 B.K.S 아이옝가의 매형이였다. 크리쉬나마차리야가 아이옝가가 15세일 때 건강을 위해 마이소르에 와서 요가 수련을 하라고 권하였다. 이 당시 크리쉬나마차리야는 마이소르에서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파타비 조이스(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를 세상에 널리 알린)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이옝가가 2년 간 크리쉬나마차리야에게 배운 시간은 고작 10일에서 15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그 당시 함께 배웠던 파타비 조이스가 말하길 크리쉬나마차리야는 아이옝가의 구루(스승)가 아니라고 했단다.



<전설과 유산이라...멋진 말이다 ㅠ.ㅠ 왼쪽이 아이옝가, 오른쪽이 파타비 조이스>


또 다른 요가계의 풍문에 의하면 크리쉬나마차리야가 아이옝가를 너무 혹독하게 가르쳐서 자살하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살하려는 때 크리쉬나마차리야와 그의 부인(아이옝옝가의 매형)이 나타나서 말렸다고 한다.


아이옝가 뿌네에서 요가를 전파하다


아이옝가가 18세가 되던 해에 크리쉬나마차리야가 그를 뿌네로 보냈다고 한다. 요가를 전파하기 위해서...종종 아이옝가는 조언을 받기 위해서 크리쉬나마차리야를 찾았었지만 크리쉬나마차리야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다. 크리쉬나마차리야가 가장 아끼던 제자인 케샤바무르티(Keshavamurthy)가 떠난 뒤 본격적으로 아이옝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때로는 어떤 동작을 다 익히기 전까진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가르칠까라고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스승들은 자신이 정말로 아끼는 제자는 매우 엄격하게 가르친다.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뉴요기즈가 시드니에 있을 당시 매일 새벽 5시까지 요가원에 도착해야 했고 오전 9시가 되서야 수련이 끝나곤 했다. 매일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물론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스승님이였던 데이비드 로쉐 선생님이 숩다 쿠르마사나를 만들어주고 15분간 머물게 하기도 했다. 마치 작은 상자안에 갖혀 있는 기분이였다-,-;;; 크리쉬나마차리야의 경우 티벳에서 요가를 배울 당시 하루 3시간 씩 3번 수련했단다... 원래 이바닥이 이런가 보다 ㄷㄷ


1975년에 그의 부인 이름을 따서 Ramamani Iyengar Memorial Yoga Institute를 뿌네에 설립한다. 가족사는 뒤에 다시 다뤄보자.



<잡지에 실렸던 아이옝가 사진. 이 곳이 바로 라마마니 아이옝가 메모리얼 인스티튜트>


아이옝가의 부인과 아이들


1943년 라마마니와 결혼한다. (약 만25세) 안타까운 사실은 부인은 46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한다. 그가 자신의 부인에 대해서 남겼던 말이

"We lived without conflict, as if our two souls were one."

"우리는 다툼이 없었고, 마치 두개의 영혼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


5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첫째 딸인 기타 아이옝옝가는 아이옝가의 뒤를 이어서 뿌네에 있는 아이옝가 센터에서 오래 전 부터 강의를 해왔다. 기타 아이옝가는 Gem for Women (2002) 책을 쓰기도 했다. 아이옝가는 80년 대 후반 쯤 이미 일반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멈추었는데 일반적인 수업들은 모두 기타 아이옝가가 가르쳤다고 한다. 몸이 안좋은 사람이나 극소수의 자신이 선택한 제자들만 아이옝가가 직접 가르쳤었다. 그의 아들 프라샨트 아이옝가 역시 몇 권의 책을 썼는데 뉴요기즈가 들은 소문에는 팔을 잃었단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부인인 라마마니는 그녀가 46세가 되던 해에 사망하였다. 


<그의 딸이자 요가 선생님인 기타 아이옝가. 나도 자식 나으면 요가 시켜야지...>



2부에서는 아이옝가가 어떻게 서구에 요가를 전파했는지, 아이옌가 요가의 특징과 그 것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스타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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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요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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